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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진 에드워드, 세 왕이야기

프롤로그

하나님이 가브리엘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내 존재의 두 부분을 취하라. 두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 각각에게 그것들을 하나씩 나눠 주어라.” 강렬하게 고동치는 삶의 두 빛을 가지고 가브리엘은 문을 열고 사라졌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두 운명의 방. “나는 여기에 하나님의 존재의 두 부분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옷이다. 너희를 감쌀 때 이것은 너희를 하나님의 큰 숨결로 옷 입힐 것이니 마치 물이 바다를 감싸는 것처럼 그의 숨결이 너희를 감쌀 것이다. 이것, 너희를 옷 입힌 이 숨결과 함께 너희는 군대를 다스리고, 하나님의 적을 모욕하며, 이름을 떨치게 될 것이다. 여기 선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한 운명이 앞으로 나왔다. “이 부분은 제 것이라 믿습니다.” “좋다. 그리고 기억하거라. 이 부분을 받은 사람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너의 삶이 다하기 전에 이 힘의 방법들로 너의 본성은 알려질 것이며 실로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이 존재를 입고 이 존재를 행사하는 모든 이의 운명이다. 이 운명은 오직 겉사람만을 만지며, 속사람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 나타나는 힘은 항상 그 내부의 근원과 결핍을 드러낼 것이다.”

 

첫 번째 운명은 하나님의 한 부분을 받고 뒤로 물러났다. 다시 천사가 말했다. “여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두 번째 존재가 있다. 이것은 선물이 아니라 유산이다. 선물은 겉사람을 옷 입히는 반면 유산은 씨처럼 속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 비록 이것은 매우 작은 파종이지만 이 파종은 자라나 이윽고 모든 속사람을 채우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운명이 앞으로 나왔다. “이것은 제 것입니다.” “그렇다. 너에게 주어진 것은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라.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우주 안에서 유일한 요소인 이것은 하나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지만 자랄 수도, 그리고 네 속사람의 모든 부분을 채울 수도 없다. 이것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좌절과 잘 섞여야만 한다.”

 

두 번째 운명은 뒤로 물러났다. 천사 리코더는 가브리엘에게 물었다. “이 운명들이 현세로 가는 저 문을 통과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가브리엘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 둘은 그들의 시대에 왕이 될 것입니다.”

 

 

1막 사울과 다윗 이야기

1장 목동 다윗, 기름 부음을 받다

뛰어난 돌팔매꾼이자 가수인 이 목동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모든 양들이 잠든 밤이면 그는 꺼져가는 불을 보며 하프를 가지고 자신만의 독주회를 시작합니다. 선조들의 믿음을 노래하는 옛 찬송들을 부릅니다. 노래를 하며 흐느끼고 또 흐느끼면서 온 마음을 다해 찬양을 하기 시작합니다. 먼 곳의 산들이 그의 찬양과 울음소리를 더욱 높은 산으로 건네주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귀에 들릴 때까지 찬양은 계속되었습니다. 찬양하지도 울지도 않을 때는 양을 한 마리씩 보살펴 줍니다.

 

하나님은 아주 특별한 사람을 찾아 온 나라를 집집마다 탐색하셨습니다. 그 결과 든든한 목청을 가진 이 시인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그는 신성한 이스라엘 땅 위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볼지어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그날은 그 젊은이에게는 굉장한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사건은 이 젊은이를 바로 왕위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10년간의 지옥같은 고통과 괴로움의 날들로 이끌었습니다.

 

그날은 다윗이 왕의 서열이 아니라 바로 깨어짐의 학교에 입학한 날이 된 것입니다. 마침내 다윗은 한 미친 왕의 성 안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만큼이나 온전치 못한 상황들 속에서 다윗은 그에게 꼭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2장 한 미친 왕의 성에서…

다윗은 아주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게 아직 전개되지 않은 이 드라마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최고의 현인이라 할지라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고통을 통과한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렇게 찾으셨지만 찾을 수 없었던 그런 종류의 사람들. 하나님은 깨어진 그릇을 원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학교를 하나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작은 학교이지요. 순종과 깨어짐을 배우는 이 신성한 학교에는 왜 그렇게 학생들이 적을까요? 그것은 이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할 많은 고통 때문입니다. 다윗은 한때 이 학교의 학생이었고 사울은 다윗을 깨뜨리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왕이 점점 더 미쳐감에 따라 다윗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권위 아래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왕의 궁전에 있게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숨을 들여마시고 자신에게 창을 던지는 미치광이 왕 밑으로 들어가 지옥과도 같은 그 길로 더 깊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심장 안에 있는 사울을 제거하지 않으셨다면 양치기 다윗은 사울왕 2세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 제거수술은 실상 여러 해가 걸린 것이었고 환자를 거의 죽게 할 만큼 무자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속사람 사울을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메스와 집게는 무엇이었나요? 하나님은 바로 겉사람 사울을 쓰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잔인한 상황들을 포용하였습니다. 그는 잠잠히, 혼자서 그 가혹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속사람 전부가 절단되었습니다. 그의 성품이 변화되었습니다. 흐르던 피가 엉겨붙었을 때 다윗은 거의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3장 떠남, 긴 겨울 속으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드디어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요? 다윗은 그것을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친히 내린 법령이 그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그를 잡아라! 개처럼 죽여라!” 그제서야 다윗은 떠났습니다. 아니, 도주하였습니다. 그때에도 그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사울을 향해 응수하지도 않았으며, 왕국을 분열시키지도 않고 혼자 떠났습니다.

 

동굴은 사기를 북돋기에 이상적인 곳이 아닙니다. 사냥감이 된 이 사람은 양치기일 때보다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윗은 어떤 이방 땅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그는 모략을 받았고 몇 번이나 죽임을 당할 뻔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다윗에게 있어 가장 어두운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는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든 곡조들은 눈물로 짝을 이루었습니다. 어떤 노래들은 피가 얼어붙을 만큼 처절하기도 했습니다. 고통이 낳는 것은 참으로 묘하지 않습니까? 그 동굴들 속에서 슬픔에 빠진 다윗은 단연 가장 위대한 찬송작가가 되었으며, 이 세상이 알게 될 모든 깨어진 마음들을 위한 가장 큰 위로자가 된 것입니다.

 

드디어 고통이 분만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겸손이 태어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눈으로 볼 때 그는 깨어진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마침내 왕의 광기를 피해 도망온 사람들이 다시 다윗을 만났을 때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변하였지요. 말수는 줄었으나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순종이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한 인간에게 순복하였습니다. 규칙을 만들어내지 않았고, 율법주의라는 말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자신들의 삶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서서히 그들의 내면도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위태로운 도주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몇 번이나 창끝에 둔 사울왕을 죽이지 않는 다윗에게 요압이 흥분하여 따져 물었을 때 다윗은 천천히 말하였습니다. “그를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지, 사람이 아니오. 나는 왕들을 미쳐버리게 하는 그 길을 택하지 않겠소.” 그날 밤 사람들은 차고 축축한 바위 위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천사들도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별난, 정말 특별난 그날의 저녁놀 속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는 믿을 만한 한 사람에게 그분의 권위를 주실 것이라는.

 

4장 사울 VS 다윗

사울은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연합하여 나라를 세웠습니다. 즉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을 위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지도자였습니다. 사울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질투에 사로잡히게 되어 살인을 꾀하는 등 기꺼이 영적인 어두움 속에 살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해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와 열정 밑에 숨겨진 것은 야망이며, 명성에 대한 갈망이며, 영적인 거인으로 여겨지기를 원하는 욕구인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 자신은 이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요. 하나님은 그들의 속이 죽은 자들의 뼈무더기 같을지라도 그 간구를 들어 주심으로써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로 그 사람 안에 있는 내적인 헐벗음의 진정한 모습을 보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한번 주어진 하나님의 은사는 죄가 있다 할지라도 취소되지 않습니다.

 

우리 가운데 사울의 뒤를 잇는 사람들은 종종 우리 중에 있는 다윗을 못박아 죽이곤 합니다. 다윗의 계열에 속한 사람이지만 인간들에게 저주받고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누가 다윗이며 어떤 사람이 사울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아시지요. 그러나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의 없습니다. 아마 아무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 지도자에 대한 당신의 반응들이 -그가 다윗이건 사울이건 간에- 바로 당신에 대한 많은 것을 보여 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