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게리 토마스

주은총3 2023. 3. 31. 14:33

1장 자연주의 영성 -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배드리는 장소가 우리 예배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의례적 건물과 푹신한 회중석을 떠나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전혀 새로운 성전’, 즉 야외로 나가고 싶어한다. 야외로 나가면 글자 그대로 메마른 심령에 단비가 내리고 딱딱한 영혼이 녹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주의자들은 보아 왔다. 대다수 회중이 꾸준히 야외에서 모이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개인이나 소그룹 예배자들은 조용한 곳에 나가 야외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큰 유익을 누릴 수 있다.

 

현대 문명의 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가려진 진리이긴 했지만 분명 성경은 야외에서 읽도록 된 책이다. 구약과 복음서의 많은 예화와 비유는 자연에 바탕을 둔 것이며, 따라서 자연 속에서 그 의미와 힘이 되살아난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현현’, 즉 그분이 임하신 사건은 대부분이 광야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은 사막에서 하갈을, 산에서 아브라함을, 강나루에서 야곱을,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만나 주셨다. 예수님도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찾으셨다. 사역 초기에 그분은 나사렛을 떠나 호숫가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 하나님이 첫 남자와 여자를 위해 낙원을 지으셨을 때 그것은 휴양시설이었던가? 하나님은 나무가 울창하고 강이 넷으로 갈라져 흐르는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니는 쪽을 택하셨다.

 

야외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날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혀 새로운 캐스팅으로 우리 마을을 찾아온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공책에 자연의 언어와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을 남길 만큼 자연의 비유를 좋아했다. 장미에 가시가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현세의 단맛에 쓴맛도 섞여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파리를 잡아먹는 거미는 마귀와 유혹을 나타내 주며, 바다로 흐르는 강물은 만물이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가 듣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통해 말씀하실 것이다. 책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당신의 시간이 고인 물처럼 정체돼 보이거든 코트와 지팡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라. 거기 닫지 않는 학교가 있다.

 

하나님은 종종 야외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우리를 만나 주신다. 개혁교단의 <벨기에 고백서> 2조는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와 보전과 통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지신다. 우주는 가장 기품 있는 책으로 우리 눈앞에 있다.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이 그 책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되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밝히 보여 준다.”고 말한다. 존 밀턴은 명시 실낙원에 이렇게 썼다. “피조물을 묵상하며 우리는 한 걸음씩 하나님께 올라간다.” 피조 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라.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도 생각하라.

 

한편, 우리에게 늘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쉼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몸과 영을 쉬기에 야외보다 좋은 곳은 없다. 예수님은 분주한 사역 일정 중에도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며 힘을 얻곤 하셨다. 제자들한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다. 우리를 돌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피조 세계는 하나님이 우리의 추운 마음을 덮어주시는 따뜻한 이불일 수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다.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

나는 진정 하나님을 보려면 우선 조용히 시간을 내어 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거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우선 믿어야 하고 다음으로 지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끝으로 받아야 한다. 첫 번째 단계로, 자연을 감상적으로 대하거나 우상으로 삼지 않으려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으로의 온전한 회심이 필요하다. 루터는 피조 세계를 하나님의 마스크라 표현했다. 마스크란 일부 가려주기도 하지만 그 안에 뭔가가 있음을 말해준다.

하나님께 깨어나는 두 번째 단계는 죽어버린 지각의 요소를 다시 살리는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시스의 제자 성 보나벤처는 야외에서 하나님을 구하기 위한 훈련지침을 제시했다. 첫째, 산과 하늘과 바다 등 피조 세계의 광대함을 생각한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과 지혜와 선을 분명히 보여준다. 다음, 피조물의 무수한 종류에 주목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동시에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끝으로,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살펴본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없다. 그것은 너무 광대무변해 온 세상을 경이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 말씀하실 시간을 드리지 않는 한 - 그리고 대화의 주도권을 그분께 맡기지 않는 한 - 우리는 받을 수 없다. 내 의제와 하나님의 의제가 다를 때가 많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분이 내 영적 산책을 주도하셔야 한다. 그분은 내가 들어야 할 말을 아신다. 숲에 가거든 받으러 가라. 걱정일랑 집에 두고 가라.

 

자연주의 영성의 유혹

․ 개인주의 - 예수님은 야외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셨으나 다시 세상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로 그리하셨다. 우리는 자연을 구실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분을 피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 영적 미혹 - 심리학자들은 성지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성경 인물이나 심지어 예수님으로 생각할 정도로 감격에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통찰을 아주 세심히 검증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의 산책 중에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권위를 둘 것이 아니라 검증 대상의 조언으로만 생각해야 한다. 확실한 기준은 성경뿐이다.

 

․ 자연의 우상화 - 어떤 자연주의자들은 범신론, 즉 자연 숭배의 우상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모든 자연 속에 하나님이 있다든지 자연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단 피조 세계에 둘러싸일 때마다 하나님의 존재를 보는 것은 사실이다. 성령이 없다면 우리도 우상 숭배의 선을 넘어 범신론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가르치는 건전한 교리와 우리를 지도하시는 성령이 있기에 우리는 범신론의 이단에 빠지지 않고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자연의 메시지를 음미할 수 있다.

 

자연주의 영성에의 초청

이 장을 읽고 짐작했겠지만 나는 신앙이 깊어지면서 자연주의 영성이 되었다. 스케줄 때문에 마음대로 자주 밖에 나갈 수는 없지만 내게 있어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기에 자연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음을 나는 배웠다. 하지만 밖에 나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것을 통해 나는 영적 체험의 욕구도 식욕, 물욕, 성욕처럼 탐욕으로 화할 수 있음을 배웠다. 우리는 영적 절정에 대한 갈망을 절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존재의 다른 부분들이 개발될 수 있다. 지금부터 여덟 가지 영적 기질을 더 살펴볼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체험은 너무도 광대하다. 우리는 날로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는 새롭고 깊은 길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2장 감각주의 영성 - 오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와 성품에 대한 깊은 이해로 끌어들이는 예술의 힘은 일부 기독교 진영에서 다분히 무시되어 왔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연구하면서 나는 그 무엇보다 감각적 예배 체험에 더 마음이 움직이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말하는 감각이란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을 가리킨다. 감각을 사용할 때 전혀 새로운 예배의 장이 우리 앞에 열린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주 요란하고 화려하게 임하실 때가 많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천국 영광에 대한 성경 기사들은 아주 수려할 뿐 아니라 최소한 조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 예로 에스겔이 기록한 체험을 생각해 보라. 그는 폭풍을 느낀다.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치는 것이 보인다. 신기한 형상과 웅장하고 휘황한 사파이어 보좌도 보인다.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나타나신 요한계시록의 경험도 매우 감각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런 영광의 모습은 요즘 흔히 축하 카드에 많이 나오는 얌전하고 조용한 예수님 그림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침묵만이 경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천국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안에는, 우리 각자 안에는, 미의 존재 앞에 감탄하는 뭔가가 있다. 나는 그것이 초월적 천국에 대한 우리 갈망의 찰나적 단면이라 믿는다.

금세기 초에 활동한 본 오그던 보그트(Von Ogden Vogt) 목사는 미와의 만남과 하나님과의 만남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 미는 겸손을 유발한다. 예컨대 오페라를 보러 가면 우리 입에서 나는 천년을 산다 해도 저런 오페라는 못 쓸 거야.”라는 말이 나온다. 보그트에 따르면 둘째 단계는 우리를 굴욕에서 존엄으로 데려간다. 그런 오페라는 쓸 수 없을지 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 이 있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셋째 단계는 다른 세계관을 낳는다. ‘가치 없는 것은 사라지고 참되고 선한 것이 나타나 자라난다.“ 마지막 넷째 단계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낳는다. 물론 이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을 만나면 도덕성이 높아지며 적어도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미에는 그런 결과가 없다. 그러나 미의 네 단계에는 회개, 정결케 됨, 깨우침, 헌신으로 이어진 이사야의 소명이 반영되어 있다. 진리, 즉 생각은 기독교의 필수 요소다. 그러나 감정도 중요하다. 보그트는 진리 표현의 그릇인 상징, 성례, 의식 없이는 사람들이 진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거기가 미가 끼어드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