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학

사회복지와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배경

주은총3 2023. 4. 5. 01:41

사회복지와 예수님 당시의 시대적 배경

 

1. 사회복지의 개념

사회복지가 무엇이냐고 할 때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은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순수과학도 아니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응용과학이기 때문이며, 개념정의에 있어 그 사회가 어느정도 산업화 되었으며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문제의 성격이 어떠하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복지의 개념규정에 있어 그 사회가 사회복지 개념에 관해 보충적 관점을 취하느냐, 제도적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Titmuss에 의하면 복지의 개념이 문화성과 시간과 공간에 의한 역사성, 사회성의 영향 때문에 각 나라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복지의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획일적이며 명확한 개념규정은 피하며 사회복지의 일반적 속성을 살피고자 한다.

김영모 교수는 사회복지(social welfare)는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순수과학이 아니고 사회문제(social problems)를 해결하는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이다.”고 했고, W.A.FriedlanderR.Z.Apte는 사회복지란 국민의 복지를 도모하며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도로서 이를 강화하기 위한 제반시책으로서의 입법, 프로그램, 혜택(benefits)과 서비스를 포함한 제도라고 정의하였다. 박영호 교수는 사회복지는 개인적 혹은 사회적으로 낙오된 자들에게 자기 스스로가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또한 그들의 주위환경에 의해 자신들의 고통이나 불안을 감소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정의하였다. 요컨데 사회복지란 개인이나 집단을 그들 생활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언이나 원조를 해주고, 전반적 복지를 위해 사회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말하며, 사회발전의 궁극적 목적인 동시에 사회발전의 수단인 것이다. 사회복지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며, 그 효과적 수행을 위해서는 종합적, 체계적 지식이 필요하다. 즉 사회학, 심리학, 의학, 교육학, 문화인류학 등의 제반 학문을 필요로 한다.

 

2. 예수의 생애

예수는 세계사적 중요성을 띠고 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나 예수에 관해 밝혀진 사실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요단강에 나타나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을 때부터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유년 시절과 30세가 되기까지 목수로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상세하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팔레스틴 지방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확실하다. 나사렛 예수에 관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자료는 신약성서이다. 20세기 초에 예수는 생존한 적도 없고 예수의 이야기는 신화요 전설이라는 주장이 여러 가지로 제기되곤 하였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역사학적으로 보아 터무니 없는 사실로 밝혀진지 이미 오래다. 예수는 로마제국의 황제 아구스트(B.C.63-A.D.14)때 탄생했고, 티베리우스 황제(A.D.14-37)때 활약했다. 그리고 예수는 유대 지방의 로마총독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 치하에서 죽임을 당했다. 예수의 역사는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부활을 통해서 새롭게 조명되고 시작되는 것이다.

 

3. 시대적 배경

1) 정치적 배경

기원전 3C부터 팔레스틴은 두 제국 사이에서 눌림을 받아왔다.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가 팔레스틴 점령이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정치와 자유를 누렸지만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왕(B.C.175-164)은 독재자로 유대인의 종교적 탄압을 가했다. 유대교의 신앙근절을 위하여 율법책을 없애며, 율법의 모든 의식을 금하며 성전에 제우스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 율법에 금한 돼지고기를 제물로 바치게 하며 강제로 먹이게 하여 경건한 신앙을 박탈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카비 운동이 일어나 저항을 하였고, 생명을 건 반란운동이 성공하여 정치적 자유가 성취되었으나 마카비 후손인 하스모니안(Hasmoneans)들의 정권욕과 영토확장에 부패하여 독립을 잃게 되었고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헤롯대왕(B.C.37-A.D.4)은 로마에 충성하여 대왕의 칭호를 얻었으나, 동족에게 배척을 받았다. 그는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을 하였으며 특히 B.C.20년에서 A.D.64년에 끝난 예루살렘 성전복구 사업은 주목할만 하다. 헤롯은 기원전 4년에 병들어 죽어 가면서 여러 분봉왕들을 세웠다. 그 중 헤롯 아켈라우스가 기원후 6년에 추방된 후로 로마는 총독정치를 하여 팔레스틴을 억압했다. 그 때 예수의 나이가 열 살에서 열 두살쯤 되었을 때이다. 명분상 독립국가 형식도 없어지고 로마황제가 임명한 총독이 팔레스틴의 통치권을 쥐었다. 예수를 재판할 때의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는 기원 후 26년부터 36년까지 약 10년간 유대총독을 역임했다.

2) 사회, 경제적 배경

로마세계는 재산과 신분에 대한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재산은 신분의 결정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었다. 재산이 많은 유산계급은 훌륭한, 최선의, 고결한, 공정한등 문자대로의 의미를 갖는 어휘들을 사용했고,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의미를 갖는 어휘들은 하층민이자 대중이라 할 다수의 가난한 자들에게 적용되어서 상층계급은 선인, 하층계급은 악인이라는 사회적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로마의 통치계급은 부를 가장 의식하던 희랍인들 만큼이나 철저하게 재산에 대해 헌신적이엇다. 로마 본토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는 반면에 식민지 주민들은 빈곤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유대지역은 농업중심의 산업체제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기술의 낙후와 노예에 의한 인력과잉 공급현상이 임금하락과 생활의 빈곤을 가져왔다. 팔레스틴의 압도적으로 많은 계층은 압제자들에 의해 한계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헤롯의 왕실, 사제, 대지주들은 상류층에 속해 있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소수의 사제계급들이 농토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팔레스틴의 경제생활은 수준이하였던 것이다. 로마는 식민지 유대의 상류층을 매수하여 반로마 운동을 막고 경제적 착취를 실시한 것이다. 로마제국의 확장은 이민족의 약탈을 통한 부와 번영을 동반하였지만 로마의 영토확장이 끝나자 경제발전은 멈추게 되었다.

아구스트 황제때인 예수시대의 사회기강은 매우 엄하여 이혼과 간통을 금하고 낙태, 유야유기를 금지하며 대가족제도를 장려하였다. 유대에서는 혈통을 중시하며 양친가계가 4대에 걸쳐 순수한 것이 증명되면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보장되었다. 혈통과 종교적 성향에 의해 사두개파, 바리새파, 엣세네파, 열심당 등 사회적 계층이 형성되었다. 예수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로마의 제국주의 밑에 있었기 때문에 유산계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암담한 생활이었다.